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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3월은 충남의 독립운동가 고광 이세영이 있었습니다

충남도가 재조명하다

충남 공주시 금흥동 110-2

2024.03.10(일) 20:22:58 | 슈퍼리포터김세진 (이메일주소:sejin1981@naver.com
               	sejin198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슈퍼리포터입니다 2024년 3월도 벌써 2주째에 다 다랐는데요

매년 3월에는 입학식과 새학기 그리고 꽃샘추위정도만 생각하시는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오늘만큼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려고 합니다

105년 전 충남 3월은 충남도민의 열기만으로도 꽃샘추위쯤은 느낄수가 없었습니다. 

올해로 105주년을 맞이한 3.1절

독립기념관이 자리잡은 충남은 독립운동가들의 본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도민여러분 3.1절의 정확한 의미 알고 계시나요?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이랍니다
 

이에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김낙중)은 3월 8일(금) 충남 출신으로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고광 이세영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아산시청소년교육문화센터에서 개최하였는데요.

 

충남도민학술회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김낙중 원장은 연구원이 충남 출신 숨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충남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정리하는등 다양한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향후 관련 문화유산의 보전과 활용방향에 대해 계속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언급하시며 이세영 생가지를 포함한 독립운동가의 생가지간 지닌 문화유산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삶과 생가지가 지난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아보고 재조명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들의 활발한 활동이 기대됩니다.

그럼 독립운동가 고광 이세영선생님(이하 이세영)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고광 이세영 선생님

▲ 고광 이세영 선생님


고광 이세영은 충무공 이순신의 12대손으로 1869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고 1941년 순국할때까지 평생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대대로 많은 무인을 배출한 가문에서 태어난 고광은 그의 나이 26세인 1895년 국모시해의 변을 당하자 분개하였습니다.

1896년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동료인 이승우의 배신으로 패하고 홍산으로 피신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뒤 육군 참위에 임명되고 1902년 헌병대 중대장 정위로 승진해서 헌병대장 서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904년 친일관료 비행에 대해 비판 후 정직되고 말았는데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민종식과 함께 의병부대를 만들어 서천, 보령, 청양 등을 장악한후 홍주성이 공략해 참모장이 되었지만 일본군의 공세로 홍주성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1906년 황해도 황주로 유배되었고 1907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청양으로 돌아옵니다.
1908년 고향으로 돌아와 성명학교 설립후 교장이 되어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했는데요
학교명칭을 '성명'이라고 칭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수구적 태도를 버리고 문명 세계로 나아가자는 것, 문명진보를 위해서는 교육보다 좋은 것은 없으며 교육은 성이 아니면 안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1913년 3월 비밀결사인 독립의군부 함경, 평안, 황해도 3도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1915년 만주에서 민단조합을 결성한 뒤 국내에 격문을 배포하고 독립군 자금을 모집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1917년 석방후 서간도 신흥강습소 교장 서리로 활동하다가 그해 11월 신흥강습소가 신흥학교로 바뀐뒤 교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1919년 2월 만주, 연해주 일대의 민족운동 지도자 39명의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의 서명자로 기록되었습니다.
1920년 경신대참변 후 독립운동 전선 재건에도 앞장서고 1922년 통군부가 결성되자 군사부장으로 참여했으나 이념과 노선의 차이로 갈등이 심회되었다고 합니다. 1930년 북경에서 조성환등과 함께 한족 동맹회라는 독립운동단체로 결성했고 1933년에는 중경에서 신사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지만 이때 고광의 나이가 64세였으니 평생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 사셨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40여년간 항일전선을 누볐던 고광 이세영!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서 발빠르게 앞장서서 행동하는 충남도가 있어서 
향후 50년 100년후에도 대한민국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전하기 위해서 노력해주시는분들 덕분에 겸허해지는 하루였습니다.
 

담당부서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백제충청학연구부
전화번호 041-840-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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