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 자락에는 조선 후기의 왕족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남연군(1788~1836)은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후손으로, 훗날 정조의 이복동생 은신군의 양자가 되었으며,
1836년에 사망하자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장사하였다가 경기도 연천군 남면 남송정에 이장한 뒤,
명당을 찾아 1845년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 북쪽 언덕 구광지에 개장하였는데,
그때 덕산 가야산에 2대에 걸쳐 왕이 나오는 자리가 있고, 광천 오서산에는 만대에 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있다는 풍수가의 말에
1846년 왕이 나온다는 자리인 가야산 가운데 언덕 건좌(乾坐)로 다시 이장하였습니다.
풍수가가 예언한 명당 자리는 가야산 가야사의 석탑이 서 있는 자리였는데,
흥선대원군은 가야사를 불태우고 석탑을 부숴버린 뒤, 그 자리에 자기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썼습니다.
이로써 고려 때부터 이어오던 가야사는 석물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가야사 터

▲ 가야산 가야사 터
흥선대원군에 폐사시킨 가야사 터를
예산군은 2012년부터 2014년에 걸쳐 조사하면서 수많은 석물을 발굴하였으며,
발굴된 석물은 현재 가야사 터에 펼쳐 보관하고 있습니다.
남연군 묘역

▲ 남연군 묘역
가야사 터에서 발굴된 석물이 있는 곳에서 100여m 떨어진 얕은 언덕에 남연군의 묘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떼를 입힌 곡장 앞에 묘를 안장하고 묘비, 상석, 장명등, 석상 한 쌍, 망주석 한 쌍을 세웠는데,

▲ 남연군묘
왕족임에도 문인석과 무인석을 비롯해 동자석, 혼유석, 향로석, 묘상각(석봉)은 두지 않았습니다.

▲ 남연군묘
남연군 이구와 군부인 여흥 민씨를 합장한 묘는 둥근 봉분 형태를 하였고,
도굴을 막기 위해 봉분 안에 무쇠를 덮고 봉분 아래에는 호석을 둘렀는데,
이러한 방비 덕분에 수교를 거절당한 독일인 오페르트가 앙심을 품고 도굴하려다 실패했다고 합니다.
한편, 이 사건으로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과 천주교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묘비

▲ 묘비
고종 원년(1864)에 충정(忠正)의 시호를 내린 뒤, 묘비를 새로 제작하여 묘 옆에 세웠으며,
유명 조선국 현록대부 남연군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증 시 충정 완산 이공 휘 구 지묘 군부인 여흥 민씨 부좌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 묘비

▲ 첫 번째 묘비
남연군 이구가 죽자 나라에서 영희(榮僖)라는 시호를 내리고 세운 첫 번째 묘비로,
고종이 왕위에 등극하자 새로 제작한 묘비에 밀려 묘 언덕 아래로 옮겨 세웠으며,
유명 조선국 현록대부 남연군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증 시 영희공 지묘 군부인 여흥 민씨 부좌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상석

▲ 상석
상석은 제물을 차려 놓는 넓적한 돌로 무덤 앞에 자리하며,
일반적으로 상석 앞뒤로 혼유석과 향로석을 배치하는데, 이곳에는 상석만 놓여 있습니다.
둥근 받침돌

▲ 둥근 받침돌
상석을 받치는 4개의 둥근 받침돌은 북처럼 생겼다 하여 고석 또는 북돌이라고도 합니다.

▲ 둥근 받침돌
둥근 받침돌의 상단과 하단에는 대문에 부착하는 장석 모양의 돌기가 조각되었고,
중앙에는 송곳니를 들어낸 도깨비가 문고리를 물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귀면이라고 하는 이 도깨비 형상은 귀신을 쫒아내는 벽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명등

▲ 장명등
원래 장명등은 묘 앞에 세우고 화창에 등잔을 놓아 불을 밝히는 용도로 쓰였으나
점차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가진 형식적인 장식물이 된 뒤로는 불을 밝히지 않습니다.
또한 매장된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1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사람의 묘역에만 세웠으며,
신분이 높을수록 표면에 새겨진 조각이 화려하고 수려합니다.
지붕돌

▲ 지붕돌
팔작지붕 형태를 한 지붕돌(옥개석) 위에 둥근 보주를 올렸고,
밑에 설치된 화사석에는 꽃잎을 조각하고 가운데 구멍을 내어 화창으로 하였으며,
상대석

▲ 상대석
화사석을 받치는 상대석의 가장자리에 두 개의 사각 틀을 조각하고
그 안에 만개한 꽃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중대석

▲ 중대석
중대석 모서리에 일곱 개의 구슬을 일렬로 세워 조각하였고,
사각 틀 안에 한 쌍의 마름모를 교차시킨 문양이 조각되었으며,
하대석

▲ 하대석
탁자 형태로 조각된 하대석에는 꽃과 난초, 새 등이 사실적으로 양각되었습니다.
석양

▲ 석양
귀신 등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지닌 석양은
봉분 앞 양옆에서 수호하듯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석양의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의 공간에는 석재를 파내지 않고 초화 무늬를 돋을새김하였습니다.
망주석

▲ 망주석
망주석은 멀리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지석의 기능을 하며,

▲ 다람쥐
표면에 다람쥐 한 쌍이 조각되어 있는데,
동쪽 망주석은 촛불을 켜기 위해 올라가는 다람쥐를 새겼고,
서쪽은 촛불을 끄고 내려오는 모습을 하였습니다.
남연군 비

▲ 남연군 비
남연군 묘역에서 약 700m 아래에 세워져 있는 남연군 비는
고종이 왕위에 오른 뒤 남연군의 가계와 생애 및 행적을 기린 신도비로,
비문은 영의정 김병학이 짓고, 글씨는 남연군의 아들 흥인군이 쓰고, 남연군의 손자 이재원이 새겼으며,
고종 2년(1865)에 세운 것으로, 충남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남은들 상여

▲ 남은들 상여
묘 입구에 남연군을 이장할 때 운구했던 상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남연군 묘를 이장할 때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 주민들이 매우 극진히 모셨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흥선대원군이 광천리 남은들 마을에 상여를 사용하도록 주었으며,
상여 이름은 마을 이름을 따 남은들 상여라고 합니다.

▲ 남은들 상여
궁중식 상여로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고, 이곳에는 복제품을 비치하였습니다.
한편, 흥선대원군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가야사를 폐사한 것에 대해 미안감이 있었는지
인근 서원산에 보덕사라는 절을 지어 가야사의 맥을 잇도록 하였습니다.
예산 남연군묘
○ 주소: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5-29
○ 운영시간: 상시 개방
○ 주차 가능
○ 입장료 없음
○ 기타 사항: 인근 200m 지점에 충남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상가리 미륵불이 있음
* 취재일자: 2025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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